엄마가 입학선물로 사준 운동화가 닳고 닳아서 구멍이 났는데도 못버리고 꽁꽁 싸매고 이사까지 왔다.신지도 않는 운동화를 깨끗히 세탁까지 해서 아마 그 때는 그게 엄마가 사준 마지막 물건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그리고 오늘 이 운동화를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내일은 졸업식이다.



돈을 벌려고 돈을 쓴다니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일단 사년제 대학이 취업을 위한 발판이 아니라는 것을 가정 하고 시작하더라도
(학비를 취업 준비용으로 생각하면 손익 계산 할 때 눈물이 나기 때문에.. 하지 말기로 하자)

문송맨인 나는.. 최소가 어학 시험비 부터 시작하는데, 일단 문과 취업 시장 인플레가 엄청나기때문에
토익은 8-900아니면 안쓰는게 낫다고 할 정도.
토익 응시료가 4만5천원 정도 하는데 문제는 응시료만 드는게 아니라는거다.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기위해 최소 인강 아니면 아예 오프라인으로 나가서 학원과 스터디를 들어야 하는데
돈은 둘 째 치더라도 거기에 쏟는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진다.

나 영어로 말할 수 있고 영어 기사 해석 할 수 있다.
가끔 자막 없이 밥스버거도 보고 (폭스에서 수입을 안해서 자막찾기가 힘들다)
영어로 이메일 작성도 할 수 있다. 영어로 PT하라고 하면 좀 빡세겠지만 할 수는 있거든
근데 굳이 ‘토익’이라는 시험의 점수를 일정 부분 받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쓴다는게 좀 이해가 안된다.

그래서 스피킹 시험으로 눈을돌리면 응시료가 7만 7천원부터 시작이다.
나는 최근에 단일 품목으로 7만원 넘는걸 사본 적이 없다....눈물을 훔치며 2개월 할부라는 굴욕적인 결정을 한다. 예전에 일할 때 신용 카드를 만들어 둔게 얼마나 다행인지.. 할부의 마법이 없었으면 나는 지금 울면서 저금없는 맨이 되어있었을거다. 시험 준비를 하면서 응시료가 개 비싸니까 이번 기회에 목표점수를 만들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시험장에서 긴장을 겁나게 하게 된다. 망치면 또 7만 7천원 써야되니까.

그렇게 어떻게 학원 없이 혼자서 영어 점수를 만들어서 원서를 넣으면
이제 나는 왜 또 인턴 한 번 안 한 게으른 사람이 되어있는지. 참 나 대충살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납작하게 보니까 별볼일 없는 사람 같기도하고 자존감도 떨어지고 남들보다 못하는것 같고 참 그렇다. 그러게 왜 인턴을 월급을 60만원만 주고 나머진 학점으로 때우냐구요 난 학점 다채웠고 돈이 더 필요했거든, 방학에 그렇게 벌면 나 학기중에 굶어 죽어야 되서 그 돈으로 방학 중에 풀타임 인턴은 할 수가 없다.

어떻게 면접 통보를 받으면 또 옷이 문제다. 요즘에 비지니스 캐주얼 입는다며 왜 또 면접 정장은 따로 있어
제발 인터넷 쇼핑도 못하게 금요일 저녁에 면접 통보주면서 월요일에 오라고 하지 좀 말아요..
쿠팡 로켓배송에 정장셋트는 없단 말이에요.
합격하면 사무실에서 절대 입지도 않을 까아만색 정장이 ‘면접용’ 정장이다. 구직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없다.
면접관이 어떤 사람 일지모르고 통상적으로 TPO에 맞는다고 여겨지는 그놈의 면접용 정장을 고를 수 밖에 없다.
밖에 나가서 정장을 사면 그게 얼마나 비싼지 알기는 하는지.. 급하게 집에서 멀디 먼 아울렛에 가서 가판대를 전전하며 제일 싼 정장을 고르고 골라서 사느라 10만원을 또 써야 된다.

그럼 이제 면접 당일 일정을 다 빼고 1시나 2시쯤에 면접을 보러 간다. 급하게 받은 통보 때문에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는 빌다시피 하며 대타를 구했다. 하루 전에 펑크 내는거 정말 매너 없는 일이라는거 알지만 아르바이트 때문에 정규직 면접을 안갈 수는 없으니까. 구직자로서 면접 자리에 늦는건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 이니까 15분 전에 가서 대기를 한다. 그럼 당연히 면접관은 10분쯤 늦게 와서 시시한 질문을 하고, 언제언제까지 연락을 주겠노라- 하고는 면접이 마무리가 된다. 당연히 면접비는 없다.

안정적으로 일 하고 내가 전공한 일을 하기 위해서 당장 내 다음주의 식비정도는 포기해야되는건가.
나의 식비와, 하루치 알바비를 날려가며 본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을 때 쓰린 속을 다스리는 것도 결국은 내가 해야될 일이라 참 웃으며 넘길 수가 없다.

돈이 없어서 돈을 벌려고하는데 그러려면 당장 돈을 써야 하는게 망설여지고
돈이 없어서 수업 외에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어서 취업시장에서 다시 밀려야 하고
돈이 없어서 당장 일희일비, 코 앞에 실패가 너무 커보이는게 정말 내가 마음이 독하지 않아서 그런거라고?

글쎄, 내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는 안보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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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님, 보내주신 서류 잘 받았습니다. 혹시 취업용 사진은 없으신가요?'


몇 날 며칠 구인 사이트를 뒤지다가, 그래도 일을 시작하려면 계약직이라도 대기업이 낫겠지 싶어서 이력서를 넣었다.

1년도 아닌 3개월 짜리 계약직, 심지어 공고도 글이 게시된 바로 그 다음 날 오후에 마감하고

정규직 전환은 절대 안되지만 운이 좋고 네가 일을 잘하면 계약을 연장 할 수 도 있다는 공고였다.


안정적인 정규직 자리를 알아봐야 할까 아니면 경력을 먼저 만들어야 할까 생각하다가

이렇게 망설이다가는 이도 저도 안될 것 같아서 부랴부랴 그들이 정해준 양식에 내용을 채우고 예전에 찍어둔 증명사진을 넣었다.


다음 날, 서류가 정상적으로 접수 되었다는 확인 문자를 뒤따라 내게만 보내진 문자. 


혹시 취업용 사진은 없으신가요?


그들은 무척이나 정중한 말투로 내게 구직자로서 기본이 안 되어있다고 말하고 있다.


내 학위도, 내 어학 점수도, 내 경력도 아니고 사진이 정말 이력서에서 문제가 된단 말인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넣는 것 조차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의문이었다. 


나도 안다 '취업 사진'이 뭔지는

다들 까만색 정장 자켓을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올려 묶고 파란색 그라데이션 배경에 앞니를 8개 정도 보이며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제대로 찍으려면 20만원은 든다던 그 사진 말이다.  


여권에 들어가는 사진도 아니고 신분증에 들어가는 사진도 아닌데 어쩜 그렇게 다 똑같은 사진을 가지고 있는지 

그게 언제부터 취업용 사진이 된건지,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학사 학위랑 그 취업 사진은 자동으로 그리고 무료로 뿅하고 같이 생겨나는건지

저렇게 당연하게 요구하는 말을 들으니 이쯤 되면 내가 뭔가 부족한 사람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런 답신을 받은 이상 자연스럽게 '저 구직건은 서류에서 떨어지겠구나.' 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될까? 당연히 그 '취업용 사진'을 찍어야겠지 

나는 지금 절박하게 취업을 해야하고 쓸데 없는 자존심으로 그들의 눈 밖에 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냥 남들하는 것 처럼 사진을 찍어야겠지.


 포털 사이트에 'ㅇㅇ시 취업 사진'을 검색한다. 여러가지 후기를 보고 '취업용'사진을 찍는 스튜디오 중에서 가장 싼 사진 관을 고른다.

2만5천원. 그냥 증명사진도 여권사진도 만원이면 찍을텐데 이건 또 특별하게 '취업용' 사진이니까 일반 증명사진 보다 두 배는 더 비싸다.

그래도 따로 정장을 입고 갈 필요 없이 스튜디오에 의상이 준비 되어 있다고 하니까 의상 빌리는 값이다 생각하고

남들은 그래도 십 몇만원씩 쓴다는데, 그 정도면 엄청 싸게 찍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유튜브에 있는 증명 사진용 메이크업 듀토리얼을 보며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화장까지 하고 스튜디오로 향한다. 

막상 찍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내 뱃 속 깊숙한 곳에서는

이게 정말 내가 이 정도의 노력을 쏟을만큼 중요한 일인가 하는 의구심이 계속해서 솟아올랐다.  


"저 취업 사진 찍으려고요"


사진사는 익숙한 듯이 사진관 구석에 준비 되어 있는 그다지 값 나가 보이지 않는 자켓과 셔츠들을 가르키며

"이건 55, 이건 66사이즈예요, 여성분들은 자켓 안에 하얀색 나시 입으시고요 나시는 여기에 있어요"


순간, 내가 지원하는 회사에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취업용 사진이라는 것을 

다른 증명사진보다 추가적인 돈을 지불해가며 정장을 입고 찍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내 성별이 여자라는 이유로 실크도 아닌 폴리에스테르인게 뻔하지만 실크인 척 광택을 내는 나시를 받쳐입고 

쇄골부터 가슴 언저리까지 드러내면서 또 그 위에는 정장 자켓을 입는다는 사실이 

마치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이 느껴지면서 내 머리 속에는 사이렌이 울렸다.


다시 한 번 뱃 속 깊은 곳에서 부터 반발심이 솓구쳐 올랐다.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정장을 갖춰입은 구직자의 예의 있는 모습이라면, 나는 왜 굳이 그 속에 내 성별을 어필하는 나시를 입어야 하지?

입고 싶지 않았다.


옷을 갈아 입으라며 사진사가 자리를 비워준 사이 나는 재빨리 가장 작은 사이즈의 셔츠를 찾았다. 그리고 자켓을 입었다.

뭔가 부족해 보였다. 뭐가 부족하지? 라고 곱 씹으며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다가 행거 한 편에 걸려있는 넥타이를 발견했다.

그래! 옷을 갖춰 입고 사진을 찍는게 그 들이 생각하는 예의라면, 정말 제대로 갖춰 입어줘야겠다.


여러가지 색 중에 그나마 어울리는 것 같은 넥타이까지 골라 매고 탈의실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사진사는 별 말을 하진 않았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결과물은 퍽 마음에 들었다. 넥타이 매고 사진 찍을 생각을 했다는 내가 조금 대견스러웠다.


다음 날 함께 알바하는 동료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내가 느낀 이 부조리함들을 그리고 작게나마 그 부조리한 일에 저항한 통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잘 나왔네요~ 그런데 그렇게 사진 찍으면 괜히 또 밉보이는 것 아녜요? 너무 자기 의견 강하고 드세 보일 것 같은데..'


가슴 한 가운데가 답답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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